해구: 열대의 해변도시

출처: cri    2024-07-03 14:36:00   편집자:  hqq

(사진설명: 아름다운 해구)
 

중국의 유명한 고성(古城) 시리즈 중 쉰 두 번째는 열대의 해변도시 해구(海口)이다. 해남도(海南島)의 북쪽, 경주(琼州)해협의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 해구는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옛 도시이자 아름다운 열대 풍광과 해변도시의 특징을 보유한 관광도시이다. 유구하면서도 모던한 해구는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기후, 흘러간 어제, 번영하는 오늘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해남성의 동북부에 위치한 해구는 하천이 바다에 흘러 드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이름이 해구이며 또 야자수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야성(椰城)이라고도 불린다.
 

경주해협과 이어지고 뇌주(雷州)반도를 바라보는 해구는 열대의 바닷가 경치를 보유한 현대화 도시이다. 현대화 도시 해구가 역사문화 도시에 선정된 것은 경산(琼山)과 갈라 놓을 수 없다.
 

(사진설명: 공중에서 본 해구)
 

1994년에 역사문화 도시에 선정된 경산시는 2002년에 해구시에 편입되어 해구의 한 구(區)가 되었고 그로부터 해구가 경산의 역사문화도시 칭호와 역사문화 명맥을 이어 받게 되었다.
 

그리고 도심에 독특한 해양문화와 화산문화, 지역문화를 보여주는, 남양의 건축풍격을 유지하는 5갈래의 역사거리가 보존된 해구는 자체로도 역사문화 도시의 명칭에 손색이 없다.
 

‘소동파(蘇東坡)는 불행했지만 해남도에게는 행운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북송(北宋)의 문호인 소동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사회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해남도의 발전을 위해 기여했음을 말한다.
 

(사진설명: 모던과 전통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해구)
 

소동파 외에도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후 이덕유(李德裕)와 이강(李綱), 조정(趙鼎) 등 많은 대신과 선비들이 중원(中原)에서 멀리 떨어진 해남도로 유배를 왔다.
 

그들은 머나먼 남쪽의 유배지에 중원문화를 전파하여 해변도시의 문화와 교육을 성행하게 했고 그로부터 이 곳에서는 많은 유명한 인물들이 나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해남에서 출생한 시와 서예, 그림 세 가지에 능한 도교(道敎) 금단파(金丹派) 남종(南宗)의 창시인 백옥섬(白玉蟾)과 ‘해남의 쌍벽’을 이루는 명(明)나라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구준(丘浚), 명나라 청렴한 관리의 대표인 해서(海瑞) 등은 중국 역사에 눈부신 한 폐지를 남겼다.
 

(사진설명: 예스러운 오공사)
 

명인들이 업적을 쌓고 후세 사람들이 끊임 없이 그들을 기리면서 해남에는 경대각(琼臺閣)과 경대서원(琼臺書院), 복지헌(福地軒), 부성고루(府城鼓樓), 오공사(五公祠), 구순의 무덤, 해서의 무덤, 수영고포대(秀英古砲臺) 등 많은 명승고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경주구에 위치한 오공사는 제사를 주제로 하는 해남의 유명한 정원이다. 오공사는 당나라와 송나라 때 해남에 유배된 이덕유(李德裕)와 이강(李綱), 이광(李光), 조정(趙鼎), 호전(胡銓) 등 다섯 명의 관리를 위해 지은 사당이다.
 

많은 청나라 때 건물이 보존되고 일년 사시절 꽃 향기 끊이지 않는 오공사는 경원(琼園)과 소공사(蘇公祠), 오공사, 학당(學堂)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오공사가 가장 유명하여 전반 정원을 오공사라 부른다.
 

(사진설명: 해서의 무덤 일각)
 

해서의 무덤은 장중하면서도 예스러움을 자랑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월동정기(粤東定氣)’라는 붉은 색의 네 글자가 새겨진 예스러운 석조 패방(牌坊)이 우뚝 솟아 있다.
 

100m 길이의 통로에는 하얀 돌을 깔고 통로의 양쪽에는 돌로 조각한 양과 말, 사자 등이 줄지어 있다. 하얀 바위로 쌓은 3m 높이와 3m 지름의 둥근 무덤은 하단이 모나게 조성되어 ‘하늘을 둥글고 땅은 모나다’고 인정한 고대 중국인들의 이념을 보여준다.
 

무덤의 앞에는 4m 높이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비석에는 해서의 무덤임을 알리는 글자가 새겨진 외에 상서로운 구름과 용, 봉황도 새겨져 있다. 묘실의 뒤에는 또 염헌(廉軒)과 청풍각(淸風閣) 등 건물도 남아 있다.
 

(사진설명: 고준 생가의 일각)
 

규성루(奎星樓)라고도 하는 경대서원은 옛날 해남 최고의 명문대인 셈이다. 청나라 때인 1710년에 신축해 1853년에 증축한 경대서원은 명나라 때의 대학사 구준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정문과 전루(前樓), 강당, 괴성루(魁星樓) 등 건물로 구성된 경대서원은 세 겹의 정원과 세 채의 2층 고건물, 네 개의 복도를 거느린다. 서원은 양쪽으로 대칭된 구도를 자랑하며 건물은 모두 대범한 특징을 띤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해남의 지방 특색이 다분한 비석인데 이 비석에는 이 곳에서 학문에 정진하는 학도들이 ‘학문을 배우고 인품을 바로 하여 쓸모 있는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사진설명: 수영고포대의 일각)
 

수영고포대는 청나라 때인 1890년 청 왕조가 프랑스 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축조한 방어시설이다. 해안에서 약 200m 거리의 언덕에 축조된 포대는 공북(拱北)과 진동(鎭東), 정서(定西), 진무(振武), 진위(振威) 등 다섯 문의 포로 구성되어 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다섯 문의 포는 바다를 향해 곧게 줄지어 지금도 경주해협을 지키고 있다. 또 포의 주변에 산재한 건물은 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애초의 모습을 유지하며 외세의 침략에 맞선 해남의 역사를 증명한다.
 

근처에는 또 해남혁명열사 기념비와 금우령(金牛嶺) 열사릉, 중산(中山) 기념당 등을 망라해 현대 중국의 혁명을 위해 기여한 영웅들을 기리는 장소도 있다.
 

(사진설명: 해구의 옛 거리)
 

해구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에게 해구의 풍물을 잘 알려면 해구의 옛 거리 노가(老街)를 가보라고 말한다. 해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도 이 옛 거리가 가장 좋다.
 

이 옛 거리는 동서양 특징이 어우러진 명청(明淸) 시기의 다섯 갈래 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진동가(振東街)와 박애로(博愛路), 중산로(中山路) 등 거리의 양쪽에는 바로크 양식과 아랍, 인도의 건물 특징을 보유한 고건물 200여 채가 보존되어 장관이다.
 

해구 노가에는 대륙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남양 풍격을 띤 이런 건물들이 집중되어 해구의 백 년 역사를 잘 보여주는, 살아 있는 해구 근대역사의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열대도시 해구)
 

인문경관이 풍부한 해구에는 자연경관도 다양하다. 이 곳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사화산(死火山) 분출구와 화산공원이 있으며 1605년 경주 지진 때 조성된 백석계(白石溪) 폭포도 장관을 이룬다.
 

오늘날 해구는 열대의 바닷가 경치와 바다섬 도시의 풍물을 보유한 생태관광의 도시로 부상했다. 또 아름다운 경관 속에 풍부한 인문 경관도 산재해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이룬다.
 

이 곳에서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하나로 이어지고 부드러운 백사장과 뜨거운 태양이 이웃하며 야자수와 녹음, 꽃이 일년 사시절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韩语翻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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