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 동서접목 건물의 마을

출처: cri    2023-07-19 14:35:00   편집자:  hqq

(사진설명: 아름다운 전미촌)
 

중국의 고촌(古村) 시리즈 중 쉰 세 번째는 동서접목의 기이한 건물 동네 전미(前美, Qianmei)촌이다. 웅장한 규모의 전미촌 건물은 유구한 역사와 심오한 문화, 우아한 옛 모습을 자랑한다. 

전미촌은 역사적으로 두 번에 걸친 건설고봉기를 겪었다. 한 번은 청나라때 전미촌 출신의 진정광(陳庭光)이 고관을 지내고 고향에 돌아와 많은 건물을 지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청나라 말기에 동남아에 가서 부자가 된 전미촌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 부를 축적하면서 오늘의 전미촌이 형성됐다.
 

따라서 전미촌에는 명(明)나라 말기와 청(淸)나라 초기의 건물들이 천여개의 방, 50여칸의 거실을 망라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옛 건물들사이를 오가면 사면에서 어젯날의 분위기가 풍겨온다.
 

(사진설명: 전미촌의 건물)
 

웅장한 진씨사당(陳氏祠堂)에서는 기이함과 시원함, 고풍스러움이 풍기고 세월의 흔적이 역역한 담과 정교한 목각, 벽돌조각, 기와에서는 어젯날의 부귀가 엿보인다. 

문위에 학벌을 의미하는 “통봉제(通奉第)”, “한림제(翰林第)”, “대부제(大夫第)”라는 등 액자를 건 웅장한 부자저택들이 빼곡이 박아서서 어젯날 집주인의 영광을 보여준다.
 

이런 명칭들은 대부분 부자들이 후손들에게 명예를 넘겨주기 위해 조정에 거액을 내고 받은 이름이다. 그로부터 전미촌에 부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수 있다.
 

(사진설명: 진자횡의 생가)
 

동서양 건축양식의 접목으로는 청나라때 지은 진자횡(陳慈黉)의 생가를 꼽을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진자횡의 생가에는 역대에 걸쳐 진씨가문의 심혈이 깃들어 있다. 

랑중제(郞中第)와 수강리(壽康里), 선거실(善居室), 삼로(三盧) 등 저택의 방수가 506칸에 달한다. 저택은 말 네 필이 병거를 끄는 구도로 되어 있고 양옥사이에 중국식 누각과 정자, 꼬불꼬불한 복도가 미궁을 방불케 한다.
 

전하는데 의하면 옛날 진자횡의 생가에는 전문 창문을 여닫는 하인이 있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해가 떠오르면 그 하인은 건물의 창문을 열기 시작하고 모든 건물의 창문을 다 열고 나면 정오가 지나서 그는 다시 창문을 닫기 시작해 저녁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진설명: 진자횡 생가의 일각)
 

네 채의 저택으로 구성된 진자횡의 생가로는 맑은 시냇물이 흘러 지나고 오른쪽에는 넓은 길이 있고 길 맞은켠에는 넓은 전야가 펼쳐져 최고의 풍수를 보여준다. 

진자횡의 생가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정교한 저택은 192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39년까지도 완공하지 못한, 202칸의 방을 가진 선거실이다. 이 건물의 창문에서 동서양 문화의 접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틀은 중국전통으로 조각하고 문의 상하좌우에 서양식 그림을 타일로 붙였다. 기둥도 원형과 모난 기둥을 망라해 다양한 모양으로 조각한 것이 이색적이다.
 

(사진설명: 진자횡 생가의 일각)
 

선거실에서 또 한 볼거리는 다양하고 정교한 목각이다. 크고 작은 홀과 건물에 기하학적 무늬와 길한 뜻의 글자, 전통적으로 상서로움을 대표하는 짐승 등이 조각되어 있다. 

그밖에 목각의 기법으로 조각한 정교한 석각도 특이한데 이런 석각은 얼핏 보면 목각물이다. 나무와 달리 아주 단단한 돌에 그토록 정교한 조각물을 만들었다는데서 높은 공예기법을 볼수 있다.
 

진자횡의 생가 북쪽에 있는 영녕채(永寧寨)는 진씨가문의 발원지라 할수 있다. 1732년에 지은 이 산채는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의미에서 영녕채라고 한다.
 

(사진설명: 전미촌의 골목)
 

상대적으로 지세가 낮은 저지대에 지어진 영녕채는 사면에 담을 둘렀는데 삼면의 담은 상대적으로 높고 한면은 낮다. 회색의 사암으로 쌓은 담은 반석처럼 든든해 오늘날까지 한 군데도 무너지지 않았다. 

담의 밖으로는 해자를 팠고 산채앞의 맑은 연못에는 푸른 산봉이 거꾸로 비껴 있다. 사방의 물이 모두 모이는 영녕채는 최고의 풍수를 자랑하며 특히 활짝 개인날 거울같은 연못에 비낀 산봉이 비경이다.
 

그리고 산채의 바닥에는 커다란 돌들을 깔았는데 여름날 그 바위위에서 더위를 가시기가 아주 좋다고 한다. 여름밤 아무리 더워도 그 바위위에 올라서면 모기가 범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전미촌의 일각)
 

23칸의 방과 5개의 거실을 가지고 있는 문원(文園)은 오늘날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사생기지로 부상했다. 아름다운 산수와 은은한 분위기, 옛스러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드라마 촬영기지로도 인기이다. 

전미촌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하는 또 하나의 문화재는 축수(祝壽)병풍이다. 머리말과 서예,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쟝르를 한 몸에 모은 이 병풍은 가족사와 문화, 교육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보물이다.
 

오늘날 전미촌은 진자횡 생가를 원상복귀시킨 토대위에서 진자횡 가족사관과 조산(潮汕) 연극관, 꼭두각시관, 조산 신부방, 조산 다방, 조주 음식점, 갤러리, 조각관, 조산 공예품관 등 새로운 명소를 추가했다.
 

(사진설명: 전미촌의 일각)

조산특색의 무용도 정기적으로 공연되어 다른 곳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밖에 해마다 정월 초닷새부터 초이레까지 전미촌에서는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사일(社日)이라 일컫는 이 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펼치고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전미촌의 먹거리 또한 아주 풍부하다. 진자횡 생가에서만 맛볼수 있는 음식외에 산해진미로 만든 포장마차식으로 된 저렴한 가격의 맛 있는 음식도 적지 않다.
 

위치: 광동(廣東, Guangdong)성 산두(汕頭, Shantou)시 징해(澄海, Cenghai)구 융도(隆都, Longdu)진.

韩语翻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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